한국역사 15

백제 도읍의 천도

한강 일대를 잃고 웅진성으로 천도 백제는 도읍을 여러 번 옮겼습니다. 도읍을 옮기는 것을 '천도'라고 하는데 한강 근처의 위례성에서 웅진성으로, 웅진성에서 다시 사비성으로 천도했습니다. 한강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를 손에 넣고 위력을 떨치던 백제는 427년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남진 정책을 펴면서 백제를 위협해 오자 그에 대비하기 위해 433년 비유왕 때 신라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를 '나제 동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475년 개로왕 때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도읍이 함락되면서 500년 가까이 지켜 온 한강 일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개로왕을 비롯하여 태후, 왕자들은 모두 죽었으며 8,000여 명이 포로로 고구려 잡혀갔습니다. 개로왕의 뒤를 이은 문주왕은 서둘러 도읍을..

한국역사 2023.11.12

백제를 강력한 국가로 만든 근초고왕

백제를 강력한 국가로 만든 왕은 누구인가? 백제는 3세기 고이왕 때 중앙 집권 국가로서의 틀을 갖추었습니다. 6명의 좌평을 두고 관직을 16품으로 나누었으며 관직에 따라 서로 다른 색의 관복을 입게 했습니다. 4세기, 근초고왕은 마한에 속해 있던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여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남쪽으로 나주와 보성, 강진 근처에 있는 나라들을 정복해 지금의 전라남도 남해안까지 백제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동남쪽으로 소백산맥을 넘어 낙동강 근처에 있던 가야의 여러 나라로 세력을 뻗쳤습니다. 마한의 최강국이었던 목지국도 근초고왕 때 백제에게 정복당했습니다. 그 후 근초고왕은 북쪽으로 눈을 돌려 태자 근구수와 함께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습니다. 근초고왕의 정복 활동으로 백제는..

한국역사 2023.10.07

문화를 꽃 피운 백제

세련된 문화 백제가 처음 세워졌을 때에는 마한에 속한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강 근처의 위례성에 자리를 잡은 백제는 차근차근 세력을 키워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를 차지하는 강국이 되었습니다. 고구려와 경쟁하던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강 일대를 빼앗긴 후 남쪽에 있는 웅진성,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를 부흥시켰습니다. 백제는 중국,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중국의 요서 지방과 산동반도, 일본의 규슈 지방을 연결하는 해상 세력권을 이루고 교역 활동을 했습니다. 백제는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백제 특유의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백제 문화의 특징은 세련된 우아함입니다. 또한 백제의 문화는 외국과의 활발할 교류 덕분에 매우 국제적이었습니다. 백제의 우수한 문화는 일본에 전해져 일본..

한국역사 2023.09.26

고구려, 우리 민족의 방파제 역할

고구려는 어떻게 우리 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했을까? 고구려는 수나라, 당나라와 약 70년에 걸친 싸움 끝에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강대국이었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이들과 싸워 패했다면 만주와 한반도는 중국의 세력권 안에 들어가 그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우리 민족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에 압력을 가해 왔습니다. 이에 고구려는 요서 지방을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수나라 문제는 598년 30만 명의 군사를 보내 고구려로 쳐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홍수와 폭풍우를 만나 군사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문제의 뒤를 이은 제는 612년 1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고구려로 쳐들어왔습니다. 고구려의 대신 을지문덕은..

한국역사 2023.09.20

고구려 사회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고구려 사회는 왕과 귀족, 관료가 중심이 되는 지배층과 평민, 천민, 노비 같은 피지배층의 생활이 두렷하게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평민은 농사를 지어 생산을 도맡는 동시에 조세와 부역의 의무가 있었습니다. 천민과 노비는 자유롭지 않은 신분이었으며, 살기가 훨씬 어려웠습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람들은 옷차림, 사는 집, 먹는 음식 등 생활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서로 달랐습니다. 고구려 여인들은 결혼하지 않았을 때에는 머리를 땋아 뒤로 드리우고, 결혼을 하면 두 갈래로 나누어 위로 얹었습니다. 이런 머리 모양은 삼국이 거의 비슷했으며, 고구려 여인들은 얼굴에 화장을 했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주름이 가득 잡혀 있는 ..

한국역사 2023.09.10

고구려, 어떻게 동북 아시아 최강의 나라 되었을까?

광개토 대왕의 정복 전쟁 소수림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고국양왕에게는 담덕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담덕이 바로 동북아시아를 주름잡은 광개토 대왕입니다. 광개토 대왕은 1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중극은 5호 16국 시대의 혼란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광개토 대왕은 중국이 혼란을 겪고 있는 틈을 타서 대대적인 정복 전쟁을 계획했습니다. 광개토 대왕은 중국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남쪽에서 세력을 뻗치고 있는 백제를 누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392년 직접 4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했습니다. 백제의 아신왕은 고구려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표시로 남녀 1,000명과 고운 베 1,000필을 바치고 왕의 아우와 대신 10명을 인질로 보냈습니다. 고구려의 서쪽 요동 지방에는 후연이 있었..

한국역사 2023.06.09

고구려

동북아시아를 누빈 고구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작은 나라에서 출발해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서로 경쟁하던 이때를 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삼국 중에서 제일 먼저 나라의 틀을 갖춘 것은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 때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아우르는 동북아시아 최강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을 물리쳐서 한반도와 우리 민족을 중국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늠름하고 강인함을 자랑하는 고구려 사람들의 생화과 문화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분 벽화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대는 기원전 37년입니다. 고구려는 압록강의 지류인 동..

한국역사 2023.06.02

옥저와 동예 그리고 삼한

소금을 만든 옥저 옥저는 함흥평야를 중심으로 하여 함경도 해안 지방에 있었던 나라입니다. 왕은 없고 읍군이나 삼로라는 부족의 대표자가 자기 부족을 다스렸습니다. 옥저는 바다 가까이 있어서 해산물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소금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옥저에서는 여자가 10세가 되면 약혼을 하고 신랑이 될 사람의 집으로 가서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결혼할 때가 되면 신부는 집으로 돌아와 신랑 집으로 가게 됩니다. 이런 풍습을 '민며느리제'라고 합니다. 옥저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땅을 얕게 파고 시체를 임시로 묻어 두었다가 살이 썩어 없어지면 뼈만 추려 커다란 나무 상자에 넣었습니다. 이런 풍습을 '세골장'이라고 합니다. 한 가족의 뼈는 모두 같은 나무 상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무토막에 죽은..

한국역사 2023.05.23

부여 사람들

가축을 잘 기르는 사람들 쑹화 강 주변에 펼쳐진 넓고 기름진 평야에서 부여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부여는 농업뿐 아니라 가축을 기르는 목축도 매우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부여 사람들은 '가축을 기른다'고 널리 알려졌습니다. 주로 말, 소, 돼지, 닭, 개를 많이 길렀는데 그중에서도 돼지를 가장 많이 길렀습니다. 부여의 말은 매우 유명했습니다. 아시아의 북쪽 지역에서 들여온 부여 말은 크고 날쌔며 잘 달렸기 때문에 명마, 신마라고 불렸습니다. 부여는 목마장을 두어 말을 기르고 길들였습니다. 길들인 말을 타고 싸우는 부여의 기병은 매우 용감했습니다. 부여에서는 말 외에도 품질 좋은 구슬, 모피 등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이것을 원료로 하는 수공업이 발달 했습니다. 중국의 역사책 '위지 동이전'에 따르..

한국역사 2023.05.13

고조선 다음에 세워진 나라들

고조선이 중국의 한나라와 싸우고 있을 무렵, 만주와 한반도에는 고조선 외에도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삼한과 같은 여러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들은 모두 철기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중에서는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한 뒤 만주 일대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손꼽혔습니다. 삼한은 한반도 남부에 자리잡은 마한, 진한, 변한을 말하는데 삼한의 풍습은 서로 비슷했습니다. 동예와 옥저의 풍습은 부여나 고구려와 비슷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동예와 옥저는 날로 강대해져 가는 고구려의 공격을 받은 후 그 지배를 받다가 결국 고구려로 흡수되었으며 삼한은 백제와 신라, 가야로 발전했습니다. 부여는 어떤 나라일까? 부여는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되어 만주로 흐르는 쑹화 강 주변의 넓은 평야..

한국역사 2023.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