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를 누빈 고구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작은 나라에서 출발해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서로 경쟁하던 이때를 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삼국 중에서 제일 먼저 나라의 틀을 갖춘 것은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 때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아우르는 동북아시아 최강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을 물리쳐서 한반도와 우리 민족을 중국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늠름하고 강인함을 자랑하는 고구려 사람들의 생화과 문화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분 벽화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대는 기원전 37년입니다. 고구려는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근처 졸본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주몽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과 싸워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복한 지역에는 성을 쌓아 백셩들을 보호하고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켰습니다.
주몽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유리왕은 압록강가의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국내성이 자리 잡은 곳은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압록강을 이용해 물자를 실어 나르기에도 편리하여 졸본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고구려는 나라 안의 여러 제도를 갖추어 가며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고구려는 2세기 태조왕 때 왕의 권력을 한층 강화해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권 국가가 되었습니다. 중앙 집권 국가로서의 체재를 갖춘 후 왕 밑에 대대로와 10여 등급의 관리들을 두어 나라 일을 맡아보게 했으며 수도와 전국을 각각 5부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귀족의 대표자들이 모여하는 제가 회의에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여 결정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과 싸우며 조금씩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미천왕은 313년 낙랑군을 점령하여 고조선이 멸망한 뒤 낙랑군이 차지해 온 대동강 유역을 400여 년 만에 되찾았습니다.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은 소수림왕
4세기 무렵 고구려는 요동 지역과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갔고 그 와중에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유목 민족과 백제에 대응하기 위해 시로운 지배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고국원왕의 뒤를 이은 소수림왕은 전쟁을 잠시 멈추고 중국과 평화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워 인재를 키웠습니다.
또한 율령을 정해 법을 만들었는데 이때 유을 형벌에 관한 법, 령은 행정에 관한 법을 말합니다.
불교는 삼국 중 고구려가 가장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372년 소수림왕 때 중국 북조의 전진에서 승려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오고 뒤를 이어 중국 남조의 동진에서 승려 아도가 고구려를 찾아왔습니다.
불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새로운 종교인 불교로 민심을 잡고 왕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불교와 함께 중국과 인도의 문화도 들어왔습니다.
불교는 고구려에 뒤이어 백제롤 전파되었고 신라가 가장 늦게 받아들였습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의 안정된 정치를 바탕으로 광개토대왕, 장수왕 때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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