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고구려 사회는 왕과 귀족, 관료가 중심이 되는 지배층과 평민, 천민, 노비 같은 피지배층의 생활이 두렷하게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평민은 농사를 지어 생산을 도맡는 동시에 조세와 부역의 의무가 있었습니다. 천민과 노비는 자유롭지 않은 신분이었으며, 살기가 훨씬 어려웠습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람들은 옷차림, 사는 집, 먹는 음식 등 생활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서로 달랐습니다.
고구려 여인들은 결혼하지 않았을 때에는 머리를 땋아 뒤로 드리우고, 결혼을 하면 두 갈래로 나누어 위로 얹었습니다. 이런 머리 모양은 삼국이 거의 비슷했으며, 고구려 여인들은 얼굴에 화장을 했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주름이 가득 잡혀 있는 풍성한 주름치마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를 입고 허리띠를 두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옷에는 물방울무늬를 비롯하여 다양한 무늬들이 있습니다.
벽화에 그려진 인물들은 대부분 왕이나 귀족 등 지배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들의 옷차림은 그와 달랐을 것입니다. 옷차림뿐 아니라 먹는 음식도 신분에 따라 달랐습니다. 쌀밥은 왕이나 귀족이어야 먹을 수 있었고 일반인들은 보리, 콩, 조로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그렇다면 반찬은 무엇을 먹었을까? 당시의 김치는 지금처럼 빨갛고 매운 것이 아니라 무를 소금에 절여 만들 것이었습니다. 김치란 말은 침채, 즉 물에 담근 채소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소금은 아주 일찍부터 먹었습니다. 함경도 해안 지방에 있던 옥저에서는 소금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비해 고구려는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소금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옥저에서 만든 소금을 가져다 먹었습니다. 김치 외에 다른 반찬으로는 콩으로 만든 장과 젓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장과 젓갈 같은 발효 식품을 잘 만드는 것은 중국까지 알려져 있었습니다.
삼국 시대의 집은 땅을 파고 짚으로 지붕을 덮었던 움집이 아니라 땅 위에 짓는 지상 가옥이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에 그려져 있는 벽회를 보면 그 당시 지배층의 집은 매우 크고 화려합니다. 풀로 지붕을 역어 만든 초가집이 아니라 기와를 올려 만든 기와집을 짓고, 커튼이나 휘장으로 장식한 방에 탁자와 의자, 침상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집의 공간은 부엌, 창고, 방앗간, 마구간 등으로 기능에 따라 나누어지었습니다. 그렇지만 평민들은 여전히 초가집이나 움집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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