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어떻게 우리 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했을까?
고구려는 수나라, 당나라와 약 70년에 걸친 싸움 끝에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강대국이었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이들과 싸워 패했다면 만주와 한반도는 중국의 세력권 안에 들어가 그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우리 민족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에 압력을 가해 왔습니다. 이에 고구려는 요서 지방을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수나라 문제는 598년 30만 명의 군사를 보내 고구려로 쳐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홍수와 폭풍우를 만나 군사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문제의 뒤를 이은 제는 612년 1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고구려로 쳐들어왔습니다.
고구려의 대신 을지문덕은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항복하려 한다는 구실을 디어 우중문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을지문덕은 적군이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있음을 눈치챘습니다.
우중문은 "고구려 왕이나 을지문덕이 오거든 반드시 사로잡으라."는 양제의 밀지를 받아두고 있었지만 을지문덕을 사로잡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습니다.
진지로 돌아온 을지문덕은 적군을 더욱 피로하게 하려고 거짓 후퇴를 했습니다. 적군은 을지문덕을 뒤쫓아 살수를 건너 평양성 밖 30리까지 도착했습니다. 이때, 을지문덕은 적장 우중문에게 시 한수를 지어 보냈습니다.
귀신같은 책략은 천문을 꿰뚫고
절묘한 계락은 지리를 통달했도다
싸워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족함을 알고 그치기를 바라노라
그러면서 "철수하면 왕을 모시고 조회하러 가겠다."라고 거짓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에 수나라 군대는 체면이 섰다는 듯이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수나라 군대가 살수를 절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 군은 총공격을 했습니다. 이때 살아 돌아간 수나라 군사들은 겨우 2,700여 명뿐이었습니다. 이 전투를 살수 대첩이라고 합니다.
수나라 양제는 그 후 몇 번 더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살기 어려워진 수나라 백성들은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양제는 신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수나라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안시성을 지킨 성주 양만춘
고구려는 수나라에 뒤이어 일어난 당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태종이 한반도를 손에 넣으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왕위에 앉힌 다음 정치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연개소문은 당나라에게 강경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당나라 태종은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정치를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핑계를 내세워 그동안 미루어 온 고구려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644년 겨울이었습니다. 당나라의 요청을 받은 신라도 참가하여 고구려를 향해 군사를 보냈습니다.
요동으로 밀려들어 온 당나라 군대는 안시성을 제외하고 고구려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함락시켰습니다.
안시성마저 빼앗기면 요동은 완전히 당나라의 손안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 군대는 안시성을 포위했습니다.
안시성은 험준하고 튼튼한 성인 데다가 10만여 명의 군사들과 지락과 용맹을 갖춘 성주 양만춘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성주 양만춘의 지휘 아래 안시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단결하고 하루에도 예닐곱 번씩 당나라 군대와 싸웠습니다.
그러자 당나라 군은 60일에 걸쳐 흙으로 성벽보다 높이 산을 쌓고 그 위로 올라가 안시성을 내려다보며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 군을 지휘하던 장수가 자리를 비운 틈에 흙으로 만든 산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안시성의 성벽 일부도 무너졌습니다. 안시성 군사들은 그 틈으로 몰려드는 당나라 군사들을 내몰고 흙으로 만든 산을 점령했습니다.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점점 흘러 9월이 되자 날씨가 몹시 추워졌습니다. 요동 지방은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곳이었습니다.
물도 얼고 식량도 바닥나자 마침내 당나라 군대는 안시성을 포기하고 군사를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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