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

블랙다니 2024. 1. 2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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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클레스
펠리클레스 :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스파르타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리스의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는 아테네가 그리스 전체를 주도했습니다. 그러자 스파르타는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파르타는 기원전 6세기에 주변의 여러 도시들과 동맹을 맺고 동맹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이 동맹을 펠로폰네소스

동맹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는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기원전 432년 코린토스의 식민지였던 케르키라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속한 코린토스로부터 독립하려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아테네가 케르키라를 지원했고 이에 코린토스, 메가라 등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속한

나라들이 스파르타를 부추겼습니다. 

이로써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아테네가 코린토스와 케르키라의 전쟁에 간섭했기 때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리스 지배권을

둘러싸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충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육군을 중심으로 싸웠고 아테네는 해군을 중심으로 공격했습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육군과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기 위해 성문을 닫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430년 페스트가 번져 많은 아테네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아테네 귀족의 우두머리인 페리클레스 마저 패스트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는 전체 인구의 1/4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와 화해하지 않고 계속 싸웠습니다. 

기원전 431년에 시작한 전쟁은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해군을 모두 잃고 스파르타에게 항복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테네의 항복으로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펠리클레스 : 아테네의 민주 정치와 예술, 과학 분야의 황금기를 만든 인물이다.

아테네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당시 귀족파의 우두머리였던 키몬을 도편 추방시키고 평민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시켰습니다. 한편 페르시아 제국과 448년 칼리아스 화약을 스파르타와 평화 협정을 맺었으며 델로스 동맹에서 아테네의 지배권을 

강화했습니다. 

또 방어를 위해 아테네 주위에 성벽을 쌓았다. 페리클레스는 델로스 동맹의 기금을 사용해서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해

아크로폴리스를 건설했고 해군 함대를 만들었다. '페리클레스 시대'라고 부르는 기원전 5세기 중반은 아테네가 가장 

발전한 시기였다.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자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성 안으로 불러들여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해 아테네에 페스트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고 페리클레스도 페스트로 사망했다.

도편추방제 : 아테네에서 기원전 5세기에 참주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우해 만든 제도이다.

참주란 자신이 인기를 이용하여 정권을 잡은 후 독재 정치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매년 아테네 시민들은 참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이름을 도자기 조각에 적어 투표했다.

그 결과 일정한 수 이상을 득표한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을 외국으로 추방했다.

 

도편추방
도편 추방에 사용한 도자기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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