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4

고구려, 우리 민족의 방파제 역할

고구려는 어떻게 우리 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했을까? 고구려는 수나라, 당나라와 약 70년에 걸친 싸움 끝에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강대국이었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이들과 싸워 패했다면 만주와 한반도는 중국의 세력권 안에 들어가 그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우리 민족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에 압력을 가해 왔습니다. 이에 고구려는 요서 지방을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수나라 문제는 598년 30만 명의 군사를 보내 고구려로 쳐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홍수와 폭풍우를 만나 군사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문제의 뒤를 이은 제는 612년 1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고구려로 쳐들어왔습니다. 고구려의 대신 을지문덕은..

한국역사 2023.09.20

고구려 사회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고구려 사회는 왕과 귀족, 관료가 중심이 되는 지배층과 평민, 천민, 노비 같은 피지배층의 생활이 두렷하게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평민은 농사를 지어 생산을 도맡는 동시에 조세와 부역의 의무가 있었습니다. 천민과 노비는 자유롭지 않은 신분이었으며, 살기가 훨씬 어려웠습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람들은 옷차림, 사는 집, 먹는 음식 등 생활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서로 달랐습니다. 고구려 여인들은 결혼하지 않았을 때에는 머리를 땋아 뒤로 드리우고, 결혼을 하면 두 갈래로 나누어 위로 얹었습니다. 이런 머리 모양은 삼국이 거의 비슷했으며, 고구려 여인들은 얼굴에 화장을 했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주름이 가득 잡혀 있는 ..

한국역사 2023.09.10

고구려, 어떻게 동북 아시아 최강의 나라 되었을까?

광개토 대왕의 정복 전쟁 소수림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고국양왕에게는 담덕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담덕이 바로 동북아시아를 주름잡은 광개토 대왕입니다. 광개토 대왕은 1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중극은 5호 16국 시대의 혼란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광개토 대왕은 중국이 혼란을 겪고 있는 틈을 타서 대대적인 정복 전쟁을 계획했습니다. 광개토 대왕은 중국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남쪽에서 세력을 뻗치고 있는 백제를 누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392년 직접 4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했습니다. 백제의 아신왕은 고구려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표시로 남녀 1,000명과 고운 베 1,000필을 바치고 왕의 아우와 대신 10명을 인질로 보냈습니다. 고구려의 서쪽 요동 지방에는 후연이 있었..

한국역사 2023.06.09

고구려

동북아시아를 누빈 고구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작은 나라에서 출발해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서로 경쟁하던 이때를 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삼국 중에서 제일 먼저 나라의 틀을 갖춘 것은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 때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아우르는 동북아시아 최강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을 물리쳐서 한반도와 우리 민족을 중국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늠름하고 강인함을 자랑하는 고구려 사람들의 생화과 문화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분 벽화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대는 기원전 37년입니다. 고구려는 압록강의 지류인 동..

한국역사 2023.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