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에게 문명

블랙다니 2023. 5. 26.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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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노소스궁전
크레타 섬에서 발굴된 크노소스 궁전은 많은 방과 직각으로 꺽어진 복도로 이루어져 구조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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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와 그리스를 이어준 에게 문명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에게 해에 크기는 아주 작지만 서양 문화가 시작되었던 중요한 섬이 있습니다. 바로 크레타 섬입니다. 보통 크레타 섬과 그 주변의 마케네, 티린스, 트로이 같은 도시 국가에서 발전한 문명을 에게 문명이라고 합니다. 에게 문명은 페니키아 인이 전해 준 오리엔트의 앞선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오리엔트의 문화가 결합한 에게 문명은 크레타 섬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더욱 발전했습니다. 에게 문명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전해져 서양 문화의 바탕이 된 그리스 문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의 오래된 전설이나 신화 속 이야기에는 크레타 섬, 미케네, 트로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들은 단순히 전해져 오는 옛날 이야기로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크레타 섬과 미케네, 트로이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전설과 신화 속에 숨어 있는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던 크레타 섬

그리스 신화에서 크레 섬을 다스리던 미노스 왕이 어느날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쓸 황소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고 포세이돈은 그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황소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제물로 쓰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 왕의 왕비와 황소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났습니다. 

미노스 왕은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복잡한 미궁을 만들어 그 속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크레타의 식민지였던 아테네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게 해서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삼았습니다. 어느 날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제물로 위장하고 미로에 침입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 테세우스는 아테네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과연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요?

미노타우로스 이야기와 크레타 문명은 줄 곧 전설로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다 1900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에반스가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면서 조금씩 역사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발굴 결과에 의하면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은 아주 복잡한 구조를 자기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미노타우로스가 갇혀 있던 미궁이 연상될 정도랍니다. 그리고 크레타 섬에 살던 사람들은 소를 숭배해서 곳곳에 소의 그림과 조각을 많이 남겨 놓았습니다. 이러한 크레타 섬의 문화가 미노타우로스의 이야기를 탄생시켰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공격에 무너진 크레타 섬은 한동안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테세우스 왕자가 제물로 왔다가 황소를 죽이고 간 것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의 벽화
크노소스 궁전의 벽화 : 기원전 1500년경에 그려졌으며 황소의 등 위로 날렵하게 재주를 넘는 선수의 민첩한 행동이        잘 표현되어 있다.

평화로운 해양 문명을 만든 크레타 인

크레타 섬에서 발달한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고 합니다. 미노아라는 이름은 크레타 섬의 왕 미노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전설에 다르면 미노스 왕은 여러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던 크레타 섬을 통일하여 다스렸다고 합니다. 

크레타 섬은 지진이 자주 발생했지만 사람들은 그때마다 지진으로 무너진 궁전 대신 더 훌륭한 궁전을 지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크노소스 궁전은 중앙에 있던 광장을 중심으로 수백 개의 방이 배치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방의 벽은 돌로 만들었ㄱ고 둥근기둥이 떠받치고 있습니다. 각 방은 제사와 정치를 위한 방, 왕족들의 방, 창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부의 벽과 천장에는 궁정 풍속, 동식물, 새와 물고기 등을 그려 화려하게 장식 했습니다. 또한 곳곳에 빛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과 천장을 만들었으며 수세식 화장실과 하수도 시설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적을 막기 위한 성벽은 없었습니다. 크레타 사람들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 섬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전쟁이나 침략을 좋아하지 않은 크레타 섬사람들의 평화로운 성격을 보여 줍니다. 궁전의 벽에는 소나 사슴 같은 육지 동물뿐만 아니라 돌고래 그림도 그려져 있어서 이들이 바다에서 많이 생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크레타 인들은 페니키아 인보다도 먼저 바다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바다를 통한 무역으로 번성했습니다. 신분 계급이 없어 사람들은 거의 평등한 생활을 했고 남녀 간의 차별도 심하지 않아 여자도 투우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번영하던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1400년경에 그리스 인들의 침략으로 쇠티회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에게 문명의 중심은 그리스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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